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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 :)

[가브리엘 샤넬]

누보 플라워 앤 테이블 / (구)썬즈플라워 2014. 4. 9. 19:47

----------------------------------------본 글은 스크랩해온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Gabrielle Bonheur Chanel

가브리엘 샤넬

별명 : 코코샤넬

fashion designer

 출생-사망 1883년 8월 19일 (프랑스) - 1971년 1월 10일

 

 

1974년 파리 부티크 개점
1955년 C자가 서로 교차한 모양 라벨 고안
1921년 향수 샤넬 넘버 5 출시
1915년 여성복 디자이너로 패션계 진출
1910년 파리 여성 모자점 개점

  

 

특이사항 :

제2차 세계대전 중 암호명 '모델의 모자'로 나치스 첩보원 활동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Chanel)은

1883년 프랑스 소뮈르에서 태어났다.

일찍 고아가 된 그녀는 할머니에 의해 수녀원에 들어가게 되고

거기서 그녀가 즐겨 부른 노래인 "Qui qu'a vu Coco"에서

그녀의 닉네임인 COCO를 얻게 된다.

그녀는 Etienne Balsan라는 품위있는 젊은 청년을 만나면서

팬케익으로 때운 심한 다이어트에서 탈출하여

승마를 배우고 사교계에 익숙해지는 전기를 맞게 된다.

그녀는 이후 부유한 수많은 연인으로부터의 도움으로

파리의 Cambon에 부띠크를 열게 되고

1차대전 이전에 카지노의 도시인 Deauville에도 가계를 열게 된다

샤넬은 콜셋으로 꽉 조여진

당시 여성복에 세련되고 절제된 새로운 스타일을 제안했다.

그녀가 장식이 많은 옷 자체를 싫어했듯이,

당시 여성들에게 그런 스타일은

일종의 관습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했다.

그녀 고유의 복잡하지 않은 스타일의

져지 드레스, 승마 자켓, 스웨터 그리고 바지는

여성 해방을 위한 일종의 상징으로 받아들여 졌다.


샤넬의 성공은 전시에 빛을 발하게 되었는데,

전시에도 식을 줄 모르는 여성들의 패션에 대한 욕구와,

사치스럽고 거추장스러운 옷을 싫어하는 취향에 잘 맞아떨어졌고, 패션디자이너로서의 명성은

전쟁을 겪으면서 더욱 더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그녀의 향수 Chanel No. 5는 1921년에 나왔는데

마를린 먼로가 잘때 몸에 걸치는 유일한 것이라는 말로

후에 더욱더 유명해 진다.

2차세계대전은 1차세계대전에  비해 행운을가져다주지 못했다.

그녀는 1940년부터 44년까지를 파리에서 보냈는데

이때 그녀가 독일 점령군과 관계가 잊다는

의심을 받는 계기가 된다.

그녀는 전쟁이 끝난 뒤 프랑스를 떠나 스위스로 가게 된다.
이것이 그녀의 전성기로서의 경력의 대부분이다,


그러나 샤넬은 은퇴후 71세에 파리에서 다시 샵을 열게 된다.
져지나 트위드 소재로 카라가 없고

끈으로 된 장식이 달린 자켓이 바로 이 시기에 나오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젊은 시절 보석을 꺼려했으나,

당시에는 보기 드문 크고 작은 색유리나

크리스털 글라스의 액세서리를 붙이기도 하였다.

간단하고 입기 편하며 활동적이고 여성미가 넘치는 샤넬 스타일은, 유행의 변천 속에서도 별로 변함이 없이 오늘날에도 애용된다.

누빈 가죽 가방에 'C'모양의 장식이 붙은 샤넬 특유의 가방도

1955년에 처음 세상에 나왔다.

샤넬은 리츠호텔에서 홀로 1971년 1월 10일 운명하였다.


그녀의 사후 12년간 The Chanel house는

그다지 성공적이랄 수 없었으나 1983년 칼라거펠트를 영입하면서 다시 성공적인 브랜드로 도약하기 시작했다.

라거펠트는 찬사를 받는 컬렉숀을 발표하였고

전통적인 샤넬룩에 이따금 파격적인 변형을 더하기도 하는등

잊혀져가는 샤넬 명성을 부흥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1991년 spring collection에서 그는

라이크라의 레깅스에 터어키풍의

형광색 샤넬 자켓을 선보이기도 했다.

또 그는 1992-3 fall/winter collection에서

가죽으로 된 biker style의 샤넬 자켓을 발표해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샤넬의 명성은 아직도 패션계의 전설로서 남아 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모델의 모자’라는 암호명으로

나치첩보원으로 활동하였음이 사후 20년이 지난

95년에 확인되어 충격을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간단하고 입기 편하며 활동적이고

여성미가 넘치는 샤넬 스타일은,

유행의 변천 속에서도 변함 없이

전세계인의 뇌리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패션계의 획을 그은 여성, 샤넬
샤넬은 패션사에 있어서 디자이너 이상의 위치를 갖고 있다.
그녀는 ‘패션계의 혁명가’라고 불리울 만큼

개척정신과 창조력으로 한 시대를 이끈 리더였다.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샤넬 라인 스커트,

금속 체인이 달린 핸드백, 토털 룩 개념의 액세서리,

최초로 자른 단발머리만으로는

그녀를 설명하기에 너무 역부족이다.

겉에서 보이는 현상이 아닌 그 속에 내재된

그녀의 예술적 정신을 살펴보면

더욱 그녀가 얼마나 시대를 앞선 선각자였는지를 알 수 있다.

 

작가 앙드레 말로는 그녀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샤넬, 그녀는 드골, 피카소와 더불어

우리 시대에 가장 위대한 인물이다”라고.

최초로 쓰인 용어인 토털 룩은

기존의 보석 개념에서 좀더 넓혀 패션 액세서리

(costume Jewellery)를 창조했다.

예를 들면 인조 진주 목걸이와 유리 보석들을

패션에 어울리도록 자유롭게 활용하게 했는데,

그녀는 자신의 진품 진주 목걸이와 인조 목걸이를 함께 믹스해

코디네이트하는 것을 즐겼다.
그녀의 창조정신은 패션에 실용성을 부여하고

궁극적으로 여성을 해방시키는 데 목표를 두었는데,

샤넬의 금 체인 핸드백도 이런 시도의 일환이다.
그녀는 여성이 항상 손에 들고 다니는 핸드백에

줄을 달아 어깨에 매도록 하였으며,

다리를 더욱 길어 보이게 하기 위해

베이지색을 이용한 슈즈를 고안했으며,

모든 포켓은 손을 넣기 위해 실용성을 바탕으로 디자인되었다.

샤넬은 디자이너인 동시에

사업가, 사교가, 예술가 등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는데

이로 인해 그녀는 유명한 귀족,

백만장자, 시인, 아티스트들과 깊은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콜레트, 피카소, 살바토르 달리, 윈스턴 처칠 등은

그녀와 각별한 우정을 나누었던 인물들.

수많은 남자들과 염문도 끊이지 않았던 샤넬은

그 당시 여성들과는 달리 예술적 감성과 대담하고 자유로운 성격, 그리고 타오르는 정열을 지닌 여성이기에

모든 사람들이 흠모하는 인물로 자리했다

  

 

 

 

 

 

" 아무리 우아한 여성이라도
시장에 갈 때는 시장 가는 차림을 해야 한다.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보고 웃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라 "

" 패션은 애벌레인 동시에 나비다.
낮 동안에는 애벌레가, 저녁에는 나비가 되라.
애벌레만큼 편한 것은 없으며, 나비만큼 사랑스러운 것은 없다.
기어가기 위한 옷도 필요하고 날기 위한 옷도 필요한 법이다.
나비는 시장에 갈 수 없고,

애벌레는 파티에 갈 수 없으니까 말이다."

-COCO CHANEL-

 

 

♥특별한 날 소중한 사람에게 특별한 꽃으로 마음을 표현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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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유선(@nouveau_flower_n_coffee) • Instagram 사진 및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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